흔한 날이었다. 담벼락 밖 소란이 가득해도 백주의 활기는 담벼락을 넘는 순간 허공을 휘돌다 그대로 거꾸러진다. 문 하나를 나서면 바로 거리이건만 한낮 해가 뜬 이후로도 사내는 문밖으로 나서지 않았다. 사지를 방만하게 뻗은 채 누운 꼴은 어디를 보아도 한량이었으나, 기생오라비를 자처하기엔 무뚝뚝함이 가득한 눈이 그저 세월을 낚는 이임을 증명했다. 오수에 가까...
상청화는 가난이 무엇인지 알았다. 배를 곯지 않는다고 부유하다는 뜻은 아니다. 타비기의 몸으로 지내던 시절부터 그는 안정적인 생활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인기가 곧 돈인 소설 연재는 한 푼이라도 아끼지 않으면 몇 달 뒤의 월세를 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는 뜻과 동일했다. 소비의 규모가 의미 없을 정도로 많이 벌면 캐비어보다 컵라면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는...
* 원작의 막북군은 고귀하고 냉혹한 미남이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설정은 따로 붙이지 않았는데 그게 상청화 몸에 빙의한 타비기를 만나면서 뒤집힌 거니까요... 사랑에 빠졌기에 가질 수 있는 설정값 이상의 매력의 원천이 결국 작가인 타비기청화 자신이라는 게 좋네 * 상청화가 고향 이야기를 할 때 위화감을 느끼는 막북군 보고싶다. 분명히...
창궁산파의 각 봉은 맡은 소임이 다를지라도 당연히 기본을 중요시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검 한 번 휘두를 일 없는 안정봉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후방 지원이니 검술 수련이니 하는 일은 초대 봉주 이후로 내려온 각 봉우리의 특색일뿐, 수선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정확히 말해 창궁산파 자체의 분업 체계라 할 수 있었다. 일상의 모든 것이 도를...
흐린 날엔 물이 샌다. 마지막 보수는 집을 비우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야를 놓고 생활하던 시간도 몇 년이었으니, 수리라 하기에도 애매한 임시방편이 어린 날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인근 상인에게 몇 번 연통을 넣어도 소식이 없어 직접 와 본 옛 집은 생각보다 더 을씨년스러웠다. 살던 날에도 비 오는 날은 줄곧 전쟁이었다. 아귀가 맞지 않는 창이 덜컹거리...
* 환생물로 막북군이 고등학생이고 상청화가 교생 실습 온 이야기로 막상 보고싶다 흙흙 막북군이 존대하니 어색한 상청화... 당연히 나만 기억하고 쟤는 모를 줄 알았는데 사실 막북군 알고 있었으면 * 어린아이 안는 법 몰라서 경단 청화 거꾸리 보따리처럼 들쳐업은 막북군이랑 갑자기 작아진 키 때문에 막북군이 안아들자마자 바닥이 70층 빌딩 꼭대기에서 본 1층처...
어느 날,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의미 없는 가정을 해 볼 때가 있었다. 가령 불시착한 로켓이 떨어지거나, 먹지 못하고 방구석에 쌓아 놓았던 컵라면이 비처럼 쏟아지는 광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묘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세계 바깥에서 온 창조주는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인간은 밤하늘 아래 수 만 광년 전 빛을 본다. 모형정원 안뜰로 떨어진 작...
물 위로 핀 불처럼 시리게 붉다. 상청화는 그 광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창백한 방이 얕은 바다를 연상케 했다. 북강의 방은 단조로워 무엇 하나 허튼 것이 없다. 침대, 협탁, 책상, 벽. 사이를 가로지르는 단 하나인 창. 그 사이로 선 남자가 고색창연하다. 오랜 시간을 영영 서 있을 듯한 모습이었다. 난파된 배 틈으로 솟은 동상처럼 희게 깎인 얼굴이 무표...
"야. 이것 좀 쓸어." 낙빙하가 고개를 들자 명범은 기다렸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뭘 봐? 쓸라면 쓰는 거지 그 표정은 다 뭐야. 채소를 든 소년의 발치에는 커다란 빗자루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아낙, 내가 할게. 어서 할 일 하러 가. 보다못한 영영이 빗자루를 주워들며 마당쇠를 자처했다. 바닥에 내려놓은 빨래통에는 세탁을 마치지 못한 이불이 한가...
안정봉주의 잠버릇을 아는 사람은 외문제자 시절의 동문 몇 명과 친전제자 뿐이었던 과거가 있었다. 막북군을 처음 만났던 날 밤, 무더운 여름 날씨를 이기지 못하고 끌어안았던 일은 그저 무의식중에 일어난 실수에 불과했다. 상청화는 자신이 무난한 수면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동문과 합숙하던 시절에도 한 방을 쓰기 불편하다는 지적을 받은 적은 ...
행복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명범은 그를 걱정이 없는 것이라고 답했고, 영영은 오늘의 즐거움이 계속 이어지는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시선을 돌리자 빙하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마음껏 사랑해도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심청추는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물었다. 허면, 행복하느냐? 어린 아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계절의 끝은 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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